
어쩌다 한 번씩, 방 한쪽에 앉아 있는 곰 인형이 전보다 조금 더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별히 위치를 바꾼 것도, 조명을 새로 켠 것도 아닌데 그 작은 얼굴이 주는 공기가 사뭇 달라 보이는 날. 나는 이런 순간이 취향이라는 감정의 출발점이라고 오래 생각해 왔다. 누군가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감정을 ‘소유’로 설명하지만, 나는 그보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듯 조용히 존재하는 느낌’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장면을 마주했다. 익숙한 곰 인형을 옆으로 살짝 눕혀두고 출근했는데, 돌아와 보니 햇빛이 기울어지는 방향 때문에 인형의 옆태만 조용히 밝아져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내려앉았다가 다시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다만 눈에 익은 물건이 아주 작은 변화로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힘을 가진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을 뿐이다.
이런 기분은 인형뿐 아니라 피규어나 작은 소품에서도 자주 느껴진다. 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작은 베어 참도, 책장 사이에 끼워둔 미니 피규어도, 심지어 오래된 키링도 마찬가지다. 형태나 색감은 변하지 않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아이, 오늘따라 예쁘네’ 하는 감정이 슬며시 올라온다. 마치 내가 쌓아온 이야기와 오늘의 기분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작은 울림 같은 것.
최근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표현을 들었다. “귀여운 물건은 쓰임보다 온도가 먼저 느껴진다”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테디베어나 피규어는 기능적인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그 앞에 멈춰 서는 순간, ‘따뜻함’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 온도는 아주 개인적이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취향이라는 말이 결국 깊이 들여다보면 ‘마음의 미세한 변화’를 가리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런 감정의 변화를 기록해두는 편이다. 일기라기보다, ‘어떤 장면이 나를 붙잡았는지’ 적어두는 메모에 가깝다. 예를 들어 곰 인형의 리본이 마침 오늘의 톤과 어울려 보였다거나, 피규어의 그림자가 길어져 색다른 표정으로 보였다거나, 책상 위 마스코트가 하루 종일 눈에 밟혔다거나 하는 것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장면이 쌓이면 취향의 방향성이 보인다. 내가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어떤 디테일에서 마음이 흔들리는지, 어떤 감도에 오래 멈춰 있는지.
며칠 전 정리를 하다 마주한 작은 곰 모양 오브제도 비슷한 경험을 남겼다. 예전에 선물로 받았던 건데, 한동안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먼지를 털어내고 책상 위에 올려두니 이상하게 공간이 단정해졌다. 마치 그 자리에서 오래 머물러도 좋다는 신호를 내는 것 같았다. 소품 하나의 배치가 공간의 감도를 얼마나 바꾸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사람 마음에도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새삼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런 경험들을 모으다 보면 귀여운 물건을 좋아한다는 건 단순히 모으는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어떤 순간에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엔 마음을 들뜨게 하거나, 가끔은 말 줄임표 같은 감정을 담아두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왜 이런 물건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이 물건은 왜 지금의 나에게 들어왔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결국 테디베어나 작은 피규어들은 표정이 없지만, 그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생생하다. 오늘도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작은 곰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작은 존재들은 소리 없이 ‘마음을 눌렀다 놓는 순간’을 계속 만들어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여 취향의 지도를 조금씩 그려간다는 것을.
-고하린 에디터